생각 정리

'장사'로는 답이 없다

대왕날치 2023. 5. 1. 15:55

우리는 직장에서 맡은 역할을 꽤나 잘 해낸다. 직장에서의 일은 다른 사람의 사업이다. 그러나 나의 일에 대해선 꾸준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사업은 맡은 부분만 잘 해내면 보상이 바로 주어진다. 나의 일은 하더라도 그에 따른 결과가 즉각적이지 않다.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영원히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차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남의 일'을 더 성실히 잘 수행하는 것 같다.

 

남의 일을 대신 해 주면 보수를 받는다. 그 보수는 내가 해 준 결과물을 가지고 사업주가 창출한 가치 중 일부다. 사업주는 나에게 지급할 보수보다 더 많이 벌어내야만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100만원어치 일을 해 주었다면 사업주는 200만원을 벌어야 나에게 보수를 줄 수 있다. 사업주는 무슨 재주를 발휘하길래, 100만원어치 일을 시켜놓고 200만원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 의문의 답이 곧 '사업'의 본질 아닐까?

 

나는 과거 10년 정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을 했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개발해주고 월급을 받았다. 회사는 내가 개발한 결과물을 가지고 내 월급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회사의 입장이 되었다. 여러 사업을 하고 있으며, 내부 수요에 의해 개발 인력을 채용한 상태다. 고정된 비용을 들여 채용한 인력은 최대한 활용할 수록 좋기 때문에, 추가적인 활용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다.

 

이 개발 인력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단순히 개발 노동력 제공만으로는 답이 없다. 한 사람의 한 달 급여가 500이라면, 정말 잘 해봐야 600~700에 되파는게 전부다. 각종 잡다한 비용까지 제외하고 나면 남는게 없다. 어쩌면 손해일 수도 있다. '개발자 노동력'이나 그러한 노동력을 단순하게 사용하기만 한 '개발 결과물' 처럼, 누구나 비슷한 수준으로 가치를 매길만한 것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 예를 들어, 3번의 프로젝트 참여 경험이 있는 5년차 안드로이드 개발자는 어느 회사에 가든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각자가 매기는 가치가 달라야 한다. 그래야 부가적인 가치가 생성되서 돈을 벌 수 있다. 판매자는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500만원어치 노력을 해야 하지만, 구매자는 1000만원을 주더라도 구매할만하다고 느껴야 한다. '단순 개발 노동력 제공'은 이러한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다. 내가 제공하는 급여 500만원짜리 개발자의 노동력은 구매자에게도 500만원의 가치일 뿐이다.

 

부가적인 가치의 창출이 가능한 시나리오는 세 가지 정도 있는 것 같다.

 

첫째,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숙련자는 1시간 짜리 영상 편집에 하루정도 걸리지만 비전문가 일반인은 일주일 정도 걸릴 수 있다. 일반인 입장에선 하루만에 편집을 끝낼 수만 있다면, 일주일치 일당 까지도 지불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숙력자는 행여나 다른 전문가에게 의뢰하더라도 하루치 일당이 최대 지불 마지노선일 것이다.

 

둘째, 정보의 비대칭에 의해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1시간 짜리 영상 제작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한지는 해당 분야에 익숙해야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그 과정이 길고 복잡할 수록 더욱 알기 어렵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사람이 말해주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고 그게 곧 가치가 된다.

 

셋째,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1시간 짜리 영상 편집에 특별한 편집 기술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 기술을 적용해 편집하는 데에 총 하루 밖에 걸리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국내에 한 명 밖에 없다. 능력자가 얼마를 부르든 그게 곧 값이다.

 

'단순 개발 노동력 제공'은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500만원짜리 개발자로 1000~2000만원 어치의 매출을 낼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수 십명의 인원이 달라붙어 제작한 대형 온라인 게임은 얘기가 다르다. 제작비의 수 배 ~ 수 십 배에 달하는 매출을 얼마든지 낼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들이 게임에 대해 느끼는 흥미가 곧 그 게임의 가치다. 제작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사용자들이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어느 회사나 그 정도의 게임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 세 가지 유형 모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수 십억을 투자하고도 한 푼도 못건질 수도 있지만, 잘 될 경우 어마어마한 돈을 벌기도 한다. 

 

결국 위 세 가지 요소에 얼마나 많이 해당하느냐에 따라 돈을 벌 가능성도 높다. 물론, 큰 손해를 볼 가능성도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투입 대비 만들어질 수 있는 결과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얘기고, 사실 이게 사업이다. 반대쪽 성향에 가까울 수록 장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