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

생각의 왜곡 : 최저가 찾아 삼만리

대왕날치 2023. 5. 5. 23:15

믿기 어렵겠지만, 인간의 생각은 왜곡 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생각이 왜곡 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진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최저가에 유난히 집착한다. 100g 당 10원이라도 더 싼걸 찾기 위해 모든 제품들을 일일히 비교하거나, 단돈 1원이라도 저렴한 판매처를 찾기 위해 최저가 비교 사이트를 몇 시간씩 해메기도 한다. 같은 제품을 몇 천원 더 싸게 판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 원정쇼핑도 간다.
 
아무 생각없이 이런 행동을 하진 않는다. '최저가에 구매했다', '한 푼이라도 아꼈다',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 등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인생 종합적으로 봤을 때, 최저가 추구 행동이 사실은 절약 쪽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지갑에서 빠져나간 돈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최소화에 성공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소비해야 했던 다른 가치들이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보자. 최종 선택을 할 때까지 고민하며 소모했던 시간도 비용이자 가치다. 그 시간을 다른 일을 하거나 돈을 버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몇% 저렴한 마트에 가기 위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기름값과 시간을 소모하는 것 역시 좋은 예시다.
 
가치를 계산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돈'에만 유난히 예민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 외 다른 가치들에 관해선 매우 둔감해서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 사실을 대부분은 자각하지 못한다. 설령 자각하고 있더라도 계산에 반영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렵지도, 실천하기 어렵지도 않은 개념인데, 어째서 이런 경향이 만연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교육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경제활동의 중심에 서 있는 1970년대 ~ 1990년대생들은 두 가지 원칙을 집중적으로 주입받으며 성장했다. 하나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취직해라' 였고, 다른 하나는 '돈 아껴서 저축해라' 였다.

 

돈을 아끼라는 것이 과거에는 상당히 맞는 얘기였다. 가난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치들 중 '돈'으로 표시되는 가치에 유난히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한 푼 더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게 대부분 옳은 선택이었고, 한 푼 더 아낄 수만 있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든 크게 상관 없었다. 그게 진리였다. 그 시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강조했던 내용은 옳았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한 푼 더 벌거나 더 아끼는 것은 당연한 목표가 더 이상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지금의 성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입되었던 바를 충실히 따르며 살아가고 있다. 카트에 넣어둔 100원짜리 동전을 회수하기 위해, 1000원어치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히 소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까워하기는 커녕, 주머니에 100원이 잘 회수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뿌듯해한다.

 

'교육받은대로 잘 이행하는 것'과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매번 하는 것' 중 후자가 대체로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 그렇지만 전자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게 행동해야 안심이 되고 바르게 행동했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의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다.

 

특이하게도 해당 사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왜곡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정해진(교육된) 내용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을 편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해진 답'을 선호한다. 둘째,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를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닐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본능이 거부한다.

 

이 글을 쓰기 전 며칠 동안, 그리고 이번 글을 쓰며 생각의 왜곡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다. 생각의 왜곡은 인간 세상 곳곳에 생각보다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사례를 가지고 글을 써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