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

조언을 구하는 상사

대왕날치 2023. 5. 13. 20:55

나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경영지원 총괄을 맡고 있다. 매일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결정을 내릴 때 애매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팀원들과 상의한다. 문제를 이러저러하게 처리할건데, 더 나은 방법은 없어 보이나? 혹시, 고려하지 못한 포인트는 없는 것 같나? 등의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을 통해 더 고민할 포인트를 찾아내기도 하고, 선택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별 문제 없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지만, 한 번 더 점검을 했다는 점 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상사를 본 적 있는지 회상해 봤다. 특별히 기억나는 경우는 없다. 모든 상사들이 결정 사항을 지시는 한다. 하지만, 결정 과정 중 협조를 구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따라서, 그런 경우가 실제로 드물다고 볼 수 있다. 협조를 구하는게 아마도 이득일텐데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간적 여유 때문은 아닐텐데 말이다.

 

'상사' 라는 상대적 포지션의 '액면가'라는 굴레에 갖혀있기 때문이다.

 

'상사' 라는 것은 그 아래에 있는 부하직원들 기준에서 '윗사람' 이다. 누군가에겐 상사이면서 누군가에게는 부하직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인 포지션이다. 반면, 대리나 과장 등의 포지션이 절대적 포지션이다.

 

'상사' 라는 포지션의 액면가는 '지시' 다. 이 액면가대로라면 상사는 위엄과 권위를 확보해야 한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결정한 지시 사항이라면 더 좋다. 그래서 유능함, 위엄, 권위 등과 반대되는 요소는 본능적으로 멀리하게 된다. 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의 협조도 구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상사' 라는 포지션의 '본질'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담당 분야에 관해 최선의 판단을 하는 것이 본질이다.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진 정보의 많고 적음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는 매번 달라진다. 필요한 만큼 적절히 주변의 도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최선의 판단, 결정에 유리하다.

 

유능하지 못해 보일까 우려될 수 있다. 권위와 위엄이 깎이진 않을까 두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보여지는 모습에만 신경쓸 수는 없다. '상사'의 본질인 최선의 판단과 결정을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소용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