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

결국 문을 닫게 된 나의 첫 자전거 동호회

대왕날치 2023. 4. 5. 03:03

내가 처음 활동했던 자전거 동호회가 폐쇄된다는 얘길 들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2021년 여름, 나는 동네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여느 입문자들처럼, 즐겁고 열정적으로 자전거를 타러 다녔다. 좋은 분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듬해 5월, 동호회 회원들간의 갈등이 있었다. 탈퇴한 멤버들이 새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곳이 내 두 번째 동호회, 지금 내가 활동중인 동호회다. 

동호회 회원들간의 갈등 얘기는 너무 흔해빠져서 식상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당시 얘기 없이는 글을 완성할 수 없다. 최대한 짧고 쉽게 적어보겠다.
 
 
 
 

 
갈등의 원인은 이랬다.
(편의상 '운동파'와 '운영진'으로 구분)

운동파 : 자전거좀 자유롭게 타자
vs
운영진 : 우리가 타라는대로 타라

 
 
당시 운영 방식은 좀 특이했다. 모든 라이딩은 운영진의 계획대로 진행되야만 했다. 회원은 벙을 계획하거나 모집할 권리가 없었다. 뜻이 맞는 회원들끼리 라이딩하는 것도 금지였다.

운영진의 통제하에 타던가 or 혼자 자유롭게 타던가

두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했다.
<함께 자유롭게 타는 옵션>은 없었다.

모순이다.
 
 



 
 
운영 방침의 모순은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한다.
요구 사항도 자연스레 많아진다.

"운동량이 부족해요!"
"새로운 코스도 가보고 싶어요!"
"차가 많아 위험해요!"

 
요구 사항이 묵살되자, 몇몇은 따로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운영진은 폭탄 선언을 한다.

동호회를 폐쇄합니다
(멋대로 행동하는 인간들 때문에 못살겠어요!)

 
저기요.. 폐쇄라니..요? 누구 맘대로?
'회원님들의 동호회'라는 얘기 기억 안나시는가?
마르고 닳도록 운영진 입으로 하던 얘기였잖아;;;

모순이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말이 바뀐다.

폐쇄 결정 철회합니다.
(그 인간들이 다른 동호회 만들었네요.
이건 명백한 반란입니다!)

 

회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는 뻔하다.

"운영진님, 잘 결정하셨어요. 마음 푸시고 훌훌 털어버리세요~"
"걱정마십쇼. 그 반동 분자들 제가 혼내줄게요!"
"그 인간들 그래봐야 얼마나 가겠어요. 얼마 못가 망할거에요~"

 
'폐쇄'라는 강력한 훼이크를 한 방 맞은 회원들이었다. 그들에게 '갈등의 원인'을 따져볼 이성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완벽한 작전 대성공이었다. 운영진 만세!
 
 
 
 


 
이 기세를 몰아 운영진은 숙청을 단행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탈퇴자들의 소개로 가입했던 회원들까지 모조리 잘라버렸다.

역시, 모순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 가스라이팅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나는 쫓겨난 동료들이 만든 동호회에 제발로 찾아갔다. 그들과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단지 그게 이유였다.
 
모순이 반복되는 곳에선 활동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활동을 줄였다.
 





 
예상대로 운영진에게 연락이 왔다. 무슨 얘길 할 지도 뻔했다. 

"분란을 일으켰던 자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목격된다는 제보도 들어와요. 그러셔야겠어요?"
"그들은 이러저러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나쁜 사람들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그러실꺼면 차라리 탈퇴를 해주시는게 나을것 같아요"

 
대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활동 안하는 사람 불러냈다는 게 핵심이다. 불러서 회유하는 행위. 순수한 목적의 동호회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숨은 의도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아닌 척 하긴.

또, 모순이다.
 
 






일대일 면담 후, 나는 활동을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강퇴 통보를 받았다. 어그로를 끌어서란다. 활동을 안했는데 무슨 어그로냐 하니, 일대일 면담 때 내 생각을 얘기한 게 어그로란다.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려서라도 공정한 척을 하려드는구나.

계속, 모순이다.
 

우리 이후로도 몇 차례, 탈퇴/강퇴 사건이 더 있었다. 물론, 이유는 언제나 같다.

맘대로 라이딩 해서
(회칙 위반 - 경고 / 강퇴)

 
 







Q : 근데 말이야, 쟤넨 왜 저렇게 회원들을 통제하려는 걸까?

 
그곳을 거쳐왔던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하나다.

A : 왜긴~ 자전거가 목적이 아니니까 그렇지!


자전거는 단지 '소재'일 뿐, 동호회 본 목적은 따로 있을 거란 얘기다. 그렇지 않고선 지금까지의 수많은 모순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뭐, 다 좋다.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동호회 운영을 순수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목적을 가지고 운영하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순수한 목적인 척 행동 해야하는 입장, 모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다 이해할 수 있다.

 
 
 
모순이 생긴다는 건 능력이 거기까지라는 뜻이다. 더 이상 욕심부려서는 안된다.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이를 거스르려고 없는 척, 아닌 척 하게 되면 부작용만 커진다.




모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렇게 내 첫 자전거 동호회는 '멋대로 폐쇄'라는 마지막 모순과 함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